이 전시는 쓰리디 프린터라는 현대적인 제작 방식을 통해 민화와 전통문양을 새롭게 해석한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손으로 그리거나 깎아내던 과거의 방식 대신 디지털 모델링과 적층 방식의 출력 과정을 선택함으로써 전통 이미지를 현재의 기술 언어로 옮긴다. 전시장에 놓인 작은 상자 형태의 작품들은 모두 쓰리디 프린터로 제작된 오브제로 각 면과 내부에는 민화에서 차용한 동물, 식물의 상징적 문양이 정교하게 재구성되어 있다.
호랑이, 봉황, 물고기 같은 익숙한 도상들은 평면 회화가 아닌 입체 구조 속에 자리 잡으며 패턴과 구조 자체가 이미지가 된다. 출력층이 쌓이며 생기는 미세한 곁은 붓질의 흔적을 대신하고 인공적인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밀도를 느끼게 한다. 이는 전통이 결코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시대의 도구에 따라 계속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들은 손바닥 크기의 오브제로 반복 배치되어 있으며 색과 문양의 조합을 통해 각기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 동일한 혁식 안에서 변주되는 이미지들은 민화가 지녔던 이야기성과 상징성을 떠올리게 하고 관람자는 하나하나를 읽듯 천천히 시선을 옮기게 된다. 일부 작업은 향 도구나 수납함 같은 일상적 형태를 띠고 있어 기능과 장식 전통과 현대의 겨계를 흐린다.
이 전시는 기술의 새로움 자체를 과시하기보다 쓰리디 프린터라는 도구가 전통을 다루는 하나의 매개가 될수 있음을 차분히 제안한다. 오래된 문양은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어 다시 출력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작 방식의 변화는 전통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과거와 지금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이 공간에서 전통과 기술이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호흡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포커에는 [Tell] 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마치 듣는 것 처럼 알 수 있고 다는 표현이다. 포커의 고수들은 서로 그 [Tell] 이라는 것을 주고 받는 때 도 있다고 한다.
오래된 것 들을 보면 가끔씩 [Tell]이 들릴 때가 있다. 오랜 건축물이 있는 역사적 장소를 간다 거나, 오랜 손길이 묻은 제품들을 볼 때 이따금씩 들린다. 만든 사람, 사용한 사람 또는 만들게 한 사람 그 누구도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들 일 수록, 맞는지 틀린지 모를 이야기 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 맞는지 틀린지 모를 이야기들을, 그 [Tell]을 다시 재구성 해 본다. 그 이야기가 새롭게 다시 되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그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본다.
파주 헤이리마을길 63-22 12월 12일 - 12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