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rium

Heyrium

in archium

“하얀색 반투명 상자”

전통 건축을 계승한다는 것은 옛 한옥의 형태를 답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 선조들이 공간을 통해 추구했던 본질적인 가치와 태도, 즉 자연과 사람, 구조와 여백이 맺는 관계를 오늘의 기술과 감각으로 다시 해석해 지금의 생활 속에 녹여내는 일, 어떻게 보면 이런 것이 ‘진정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국의 근대 건축은 급속도로 성장해온 탓에 우리의 문화를 천천히 다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기회를 놓쳤다.
그 과정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던 우리의 전통적 공간 개념인 여백과 느슨한 경계, 그리고 안팎이 이어지는 흐름은 잊혀졌다.
이 프로젝트는 그 잃어버린 감각을 현대의 재료와 구조, 그리고 기술을 통해 새롭게 복원해 보려는 시도이자, 전통과 현대, 질서와 유연함이 만나는 경계 위의 실험이다.

건물은 철골 가구조 위에 4면을 복층 폴리카보네이트로 감싼 반투명한 상자처럼 서 있다.
낮에는 주변의 풍경과 빛을 머금고, 밤에는 내부의 온기가 은은하게 새어나온다.
시간과 빛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어느 순간 스스로 희미해진다.
벽은 존재하지만 완전히 닫혀 있지 않고, 빛과 그림자가 그 자리를 대신해 공간의 깊이와 농도를 만든다.

“엄격한 규칙 속의 느슨한 경계”

기성품인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의 폭이 900mm이기 때문에, 이를 지탱하는 금속 하지가 동일한 간격으로 건물을 감싸면서 엄격한 규칙을 만든다.
이 900mm의 반복이 평면과 입면에 엄격한 규칙으로 작용했고, 건물 전체가 그 리듬을 중심으로 질서를 잡아나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엄격한 질서’가 역설적으로 공간을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투명한 외피는 내부를 완전히 숨기지 않고, 지하의 선큰과 중층의 테라스, 그리고 최상층의 옥상 공간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흐름은 건물을 하나의 열린 장치처럼 만든다.
경계는 존재하지만 단절되지 않고, 규칙은 엄격하지만 그 안의 여백은 부드럽게 흐른다. 이 건물은 그렇게 스스로의 틀 안에서, 바깥과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철골의 원형기둥은 한옥의 목구조를 생각했고, 기둥과 보가 명확하게 드러나되, 그 사이의 틈이 공간을 만든다. 한옥이 자연을 받아들이기 위해 구조를 열어 두었듯, 이곳의 철골도 하중을 지탱하는 단순한 틀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관계의 장치로 작동한다.

외피로 사용된 복층 폴리카보네이트는 한지의 반투명한 특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재료이다.
햇빛은 그 표면에서 한 번 부드럽게 확산되고, 실내에서는 외부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친다.
이 재료는 복층 유리와 함께 쓰여 단열과 차음 성능을 강화하면서도, 빛의 흐림과 투과라는 감각적 특성을 유지한다.
기술적 효율과 감성적 투명성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재료의 균형이다.

시공과정

program : Office , Gallery

material : Polycarbonate

size : 264.01㎡

location : Heyri Maeul-gil, Tanhyeon-myeon, Paju-si, Gyeonggi-do

structure : Eden Structural Consultants

mep : Samwoo Engineering, Hyeobin electrical Design

construction : Kanhaus 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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