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p house
8.5p house
“한층에 8.5평”
결혼 후 몇 년간 전세를 전전하다가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게 되었다.
비록 낡고 작은 집이었지만 나에게 집을 산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산 대지 면적에 해당하는 땅속 깊은 곳 부터 대류권 성층권을 넘어 우주 끝까지 내 소유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행위여서 무한히 벅차오르고 두근 거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지 면적은 11.99평이고, 건물은 8.5평짜리 두개층이 전부였다.
입주까지 남은 몇 달 동안 퇴근 후 매일 도면 앞에 앉아 공간을 상상했다.
정말 힘들게 얻은 집인 만큼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주거환경 개선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공간적인 선언을 한다거나 앞으로 건축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공간의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집은 작았지만,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생각은 대류권 성층권을 넘어 우주 끝까지 닿을 정도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설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 헷갈리지 않는다. 그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여러 단독주택들을 설계하고 감리했었다. 비용, 일정, 사용자의 취향, 주변의 시선 등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고, 그로 인해 때로는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예컨대 어떤 집은 2층 규모의 단독주택이었는데, 예산 문제로 인해 VE를 하던 중 한 층만 원목마루를 사용할 수 있게되었다. 나는 부부가 주로 머무는 2층 안방에 원목마루를 깔자고 제안했지만, 손님이 올 수도 있는 1층 거실에 원목을 깔고 2층은 강마루로 하겠다는 결정을 들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종 결정권은 내게 없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사는 집이라면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절대 헷갈리지 않겠다고..
둘째, 우리 집에는 우리가 잔뜩 묻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흘러 우리가 변해도 변한 우리가 자연스럽게 묻어 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유행은 무시하기로 했다. 당연히 잡지나 인터넷 매체에서 좋은 공간의 이미지를 많이 봐서 어느정도의 흐름과 디자인 공식이 머리에 많이 들어있지만 최대한 신경 안쓰려고 노력했다.
셋째,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군더더기는 빼보자. 언젠가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는 선배의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 시공을 도와주러 갔다가 "케이싱"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그게 유행이었 던 것 같은데 문틀과 벽이 만나는 곳에 필름지가 붙어있는 MDF를 한번 더 덧 붙이는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갔는데, 선배에게 물어보니 그걸 붙이면 문틀과 벽지가 만나는 선을 가려서 깔끔하게 보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웨인스코팅" 이라는 장식이 기억에 남는데 벽에다 네모를 여러개 만들어서 붙이는 디자인인데 도무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윗층들과 아랫층들이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 본인들만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남다른 포인트가 있어야 해서 만든다고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는 디자인 중 하나가 "아트월" 이라고 갑자기 한 쪽 벽을 대리석으로 마감하는 식인데, 도저히 내 기준 에서는 어떤 디자인 어휘 인지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진정한 아트월 이라면 멋진 예술 작품을 배치하고 감상하는데 방해가 안되도록 시각적 요소들을 비워줘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벽에는 아무 장식 없이 때가 묻어도 물티슈로 지우면 지울 수 있도록 페인트를 칠하거나 합판을 그대로 노출 시켰으며, 걸레받이나 천장몰딩, 문틀 같이 면 이외의 요소가 하나도 없고, 창틀 조차도 최대한 안보이게 디자인 적으로 숨겼으며, 열리지 않는 창은 창틀 조차도 끼우지 않고 유리만 있도록 디자인 했다.
철거
시공 원칙은 세 가지였다:
제시한 시공비는 절대 깎지 않기,
제시한 시간은 충분히 보장해 주기,
좋은 자재를 아끼지 않기.
이 세가지 원칙을 실행하기 위해선 작업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니, 나는 공종별로 직접 유능한 전문가 들과 계약을 하고 공사현장에서 내내 그들과 함께 현장을 감독하는 방법을 통해 이 원칙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시공비를 줄이는 대신, 발품을 정말 많이 팔았다. 을지로 방산시장, 청계천 자재상가, 윤현상재의 세일코너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저렴한 목재를 찾아 인천 근교의 자재상까지 갔었고, 아메리칸 스탠다드 변기조차 가장 저렴한 판매처를 수소문해 직접 구매 후 차에 싣고왔다. 그 당시 국내에 시공 사례가 없던 테라조 싱크대 상판은 그 테라조를 개발해낸 유럽의 어느 업체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한 달 반이면 끝났어야 할 공사가 네 달 넘게 걸렸다.
< 그 당시 업체들과 맺었던 계약서에 적었던 요구사항 >
좋은 재료를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니 재료에 마땅히 들여야 할 정성을 들여주세요.
편한 시공 방식보다는,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선택해주세요.
평활도, 간격, 수평, 수직에 민감합니다.
셀프 인테리어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장인의 연륜이 묻어나기를 바랍니다.
제시하신 금액에서 한 푼도 깎지 않겠습니다.
정성을 들여서 작업을 하다가 작업기간이 늘어나는 부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실력 있는 작업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 늘 아쉽게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던 장인들에게,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정성껏 최선을 다해서 작업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영광은 절대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자재 하나를 고를 때도 최대한 좋은 것을 골랐고, 현장에서 여러 결정을 해야 할 때에도 최고의 퀄리티를 위한 결정만을 했다.
PROCESS
AFTER
program : Single-family house
material : Italy Tiles, Wood flooring, Birch Plywood, Zinc roof
size : 79㎡
location : Cheonggyecheon-ro, Seongdong-gu, Seoul
